실록 - 장군님의 전사들

열 번째 이야기

“이수복 영웅은 화구를 막았지만 나는 달리는 차를 막았소”

북한의 한 구분대에서 있은 일화다. 사단장이 구분대에 나가 전사들에게 “공화국 영웅 이수복을 따라 배워야 한다”고 강연을 했다. 이수복은 6?25전쟁 때 적의 화구(火口)를 몸으로 막아 부대의 돌격로를 열어놓았다고 북한이 내세우는 대표적인 전쟁영웅이다. 사단장이 이러한 강연을 마치고 나와 차를 타고 달리는데 갑자기 전사 한 녀석이 뛰쳐나오며 차를 가로막았다. 운전수가 급제동을 하고 사단장이 차에서 내려 그 전사에게 다가가니 그가 하는 소리가 “이수복 영웅은 화구를 막았지만 나는 달리는 차를 한 몸으로 막았소”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정신이 나간 줄 알고 제대를 시켜버렸다고 한다.

그때는 이 이야기가 한낱 지나가는 거짓말처럼 느껴졌지만 선군시대에 와서 이것은 현실이 되어 버렸다. ‘달리는 차를 몸으로 막는다’는 이야기는 이제는 지나가는 이야기가 아니다. 북한의 자동차가 제일 애를 먹는 것이 바로 공산군 전사들이 달리는 차를 막는 것이다. 하긴 군대가 제일인데 자동차 같은 게 뭐라고……. 응당 저절로 서야지.

북한은 나라 사정으로 차도 많지 않거니와 더구나 연료가 없으니 거의 모든 차가 서있는 상태이다. 한 개 군에 실제로 뛰는 차를 세어본다면 뜨락또르를 포함해도 한 20∼30대 정도 되겠는지. 하루 종일 나가 있어도 달리는 차를 50대 보기도 힘든 날이 많다. 북한에서 유일한 교통수단은 기차와 자동차다. 그런데 기차는 제 시간에 제대로 다니지 않지, 또 기차를 타자면 여행증이 있어야 하지, 그래서 장사를 해야 하는 북한 백성들에게는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것이 제일 합리적이다. 이것이 ‘장군님의 전사들’에게는 행운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의 도로에는 두 손에 돌멩이를 쥔 군인들이 주런히(나란히) 서서 지나가는 자동차를 가로막는 것을 너무나도 흔히 볼 수 있다. 만일 제대로 서면 그래도 괜찮지만 조금이라도 늦게 세우거나 안 세울 것 같으면 차는 박살이 나고 운전수도 마찬가지다. 달리던 기차도 이따금씩 마음먹으면 세울 수 있는데, 하물며 자동차 같은 것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

이제는 군인들만 보면 멀리서부터 저절로 차가 선다. 탑고개를 지날 때 운전수들이 세금을 응당 내야하는 것은 물론이고 장사꾼들도 세금을 바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차를 잡아놓고 보내주지 않는다. 그러니 모두가 자발적으로 세금을 바친다.

북한에서 어딜 가자면 제일 좋은 방법은 지나가는 군인에게 돈이든 술이든 담배든 쥐여주고, 차를 태워달라고 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 빠르고 합리적이다. 공산군 아저씨들은 이제는 남의 자동차를 마치 자기네 집 자가용으로 착각하고 있는지 5분이면 걸어서 갈 거리도 지나가는 차를 세워 타고 간다. 때로는 차를 오던 방향으로 되돌려 타고 가기도 한다. 운전수들은 할 수 없다. 울며 겨자 먹기라도 공산군들의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다.

그 수난을 받기 싫어서 대체로 낮에는 차를 세워 놓았다가 밤중이나 새벽에 차를 전속력으로 몰고 다니지만 그것도 위험하다. 그러다가 실수로 공산군이 죽는 것은 별문제인데, 차가 고장이 난다든지 공산군에게 잡히기만 하면 모든 것이 끝장이다. 차는 물론이고 운전수도 박살이 나야 하니까. 무자비하게 차를 막다가 차에 깔려 죽는 전사들도 많다.

북한의 함경남도 금야군에 박달령이라는 높은 고개가 있는데 여기서 대참사가 발생한 적이 있다. 사연인즉 훈련을 나갔다 돌아오던 군인들이 한밤중에 차를 가로막은 것이 발단이 되었다. 장거리 출장을 갔다오는 차였는데 운전수는 예순이 넘은 사람이었다. 차가 로씨야(러시아)제 신형 「질」인지라 급제동을 하다보니 약간 밀려 앞으로 나가 멈춰 섰다. 그랬다고 군인들이 나이 먹은 운전수를 집단구타하고는 차를 오던 방향으로 되돌려 모두가 올라타서는 부대로 돌아가자고 명령했다.

운전수는 너무나도 화가 나 한참 동안이나 생각하더니 차를 시속 100킬로미터 이상에 놓고 그 고개에서 벼랑 끝으로 그대로 날아가 버렸다. 결국 거기에 탔던 군인 20여명은 물론이고 운전수도 즉사했다. 얼마나 원통했으면 그 나이 먹은 운전수가 그렇게 행동했겠는가.

실록: 장군님의 전사들
프롤로그 / 나가자 인민군대 / 처음부터 신발 잘 신겨라 / 쟤들이 싸움이나 하겠노? / 우린 나라를 지킨단 말이야 / 훈련에서 배운 습격전을 실천에 옮긴다 / 현대판 '임꺽정'들 / 잔재주는 따를 사람이 없어 / 1900년대 태생은 다 동갑 / 장군님의 전사들과 누가 감히 맞서? / 이수복 영웅은 화구를 막았지만 나는 달리는 차를 막았소 / 한창 나이의 전사들 / 장사의 능수들 / 병사들의 제대준비 / 에필로그